<첫 번째 글타래> -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하루와 오늘은 다르다. 하루의 연속이 인생이라면 오늘의 연속은 결국 삶이 된다. 인생이 짧고 삶이 영원한 이유다. 비참했던 하루들을 추억으로 짓이겨도 오늘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는데, 의미로 꽉꽉 채우고들 계신가요.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by 차가운사과 | 2008/12/31 12:59 | 트랙백 | 덧글(8)
희비극
 신문 가판대에 조중동밖에 없다.
by 차가운사과 | 2008/10/29 11:52 | 트랙백 | 덧글(0)
소설가적 시대유감
   고등학교 3학년 때, 세기말적 공황이 한국에 도래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 적이 있었다. 스티븐 킹은 미국 전역에 바이러스가 퍼지면 초래될 공포를 상상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고 하는데, 내가 상상하던 세기말적 공황은 경제 지표가 동반하락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그 불안심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사회질서를 하나씩 해체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바이러스처럼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IMF를 2년만에 극복했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절대 주목하지 않을 무료와 권태, 절망감을 주위에서 보아온 나로서는 바이러스에 못지 않은 세기말적 공황이 바로 경제위기의 고착화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최근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6개월만에 주가가 두 배 가까이 하락하고 환율이 상승한다는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한 소설이 있다면 소설 속의 사람들은 분노와 공황에 휩싸여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찾아 분주히 분노를 옮기는 작업을 수행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고, 세상은 제법 아무일 없다는 듯 돌아가고 TV에선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라며 이명박 현 대통령이 의회에 법안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뭔가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제법 아무렇지도 않는 듯, 침착하게 살아간다.

   고등학교에서 급식 배식을 위해 줄을 서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군가가 묻는다. 이 세상에서, 지금 사람들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현실화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대답이 돌아온다. 아마 원래부터 이 세상은 그려려니 하고 살겠지, 아마.



   제목이 소설가적 시대유감인 이유는, 소설가는(혹은 나만) 자신이 상상한 내용이 먼저 현실화되면 '불행'하기 때문이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불행'하다.
 
by 차가운사과 | 2008/10/28 00:09 | 트랙백 | 덧글(0)
최진실이 얼마나 유명했었는지는 몰라
 그러나 사카이 이즈미가 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악몽은 전염된다.
by 차가운사과 | 2008/10/03 01:5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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