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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른 선거를 하고 있다”
오후 8시 반, 교통카드를 교체하려고 정문이 아닌 계단길로 내려가다가, 종로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카드를 사고 나오다가 유심히 손학규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을 지켜보니, 웬 정장차림의 남자가 어떻게 율동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듯한 몸짓을 선보이며 제 지적 흥미를 자극하더군요. 기왕에 주위 선거운동원들도 꼼꼼히 둘러보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30-50대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저마다 율동을 선보이며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더군요. 어찌나 쑥쓰러워 하시던지 제가 다 민망할 지경이였습니다. 그런데 최현숙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의 면면은 우선 활기차 보였습니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많아보였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고 누가 시켜서 나온게 아니라, 정말 자신이 원해서 활동한다는 느낌을 주어 보기 좋았기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곧이어 최현숙 후보가 올라오셔서 무려 '개똥벌레' 1절을 열창하시기에 잠시 시간을 내서 연설을 경청하기로 했습니다. ㈎ 10분에서 20분 가까이 진행되었을 연설을 들으며, 정치에 대한 보편적인 냉대가 결국 누구에게 피해를 줄 것인가에 대한 숙고를 해 보았습니다. 진보신당을, 성소수자의 국회위원 도전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결정권'마저 박탈당한 채, 이미 주류를 차지한 기득권들의 정치 담론에 휩쓸려 매번 기호 1번이나 2번 중 하나를 주류로 인정해야 하는 비극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 연설을 들으면서 줄곧 그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서, 정당의 민주화가 절실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의견을 가졌는가에 대해서 신경쓰도록 할 모든 권리가 박탈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연설이 끝난 뒤에 최현숙 후보가 차도를 건너 오셔서 말을 나눌 기회를 얻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들으면서 언제쯤이야 우리가 '주장들에 대한 자유로운 축제'를 나눌 수 있게 될지에 대한 회의가 먼저 들었지만요. 일다㈏에서 기사를 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놀라시더군요. (저도 아직까지 구독한다는 사실이 좀 놀랍습니다.) 제 질문 내용도 약간 회의적인, 성소수자 담론이 매몰되는 문제라던가 비례대표 대신 정치 1번지에 도전장을 던진 이유(효과)에 대해서라던가, 이미 일다에 언급된 내용을 되풀이해 물어보는 느낌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좀 아쉬웠습니다. 담화 자체는 좋았습니다만. 정말로 기대되는 건, 단순히 돈을 주고 조직원들을 사서 역 앞에 배치해두는 그런 선거활동에서 탈피해서 자신의 정치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축제'가 되게 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었습니다. 일련의 회의적인 물음을 성의있게 대답하시면서 '활동의 긍정성'을 웅변해 주신 점도 좋았습니다. 정치적 담론의 자유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선례들을 먼저 낳는 경우가 많은 나라라는 우려를 일소할 활동들을 기대합니다. 건강한 정치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힘이 진보신당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현재진행형일 것입니다. 지금은 그 힘이 매우 미비하다는 사실만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적 정당문화를 만드는 데,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가진 대안세력으로서 기능하는 데 앞장설 정당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요는 현재의 한국 정치 문화에서, 실제의 정치적 담론을 정하는 건 그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 시선을 그들이 조장했다고 할지라도.) 언제쯤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신나게 외치면서 즐거워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88만원 세대에게는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간혹 하기도 합니다. 다만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당 문화가, 정치적으로 보수냐 진보냐 하는 스펙트럼 논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아웃팅㈐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이야기하던 수 명의 건강한 시민들과, 그 담론을 형성하는 최현숙 후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 여기서 우선 명확히 해둬야 할 부분은, 최현숙 후보측에서는 조금 뒤에 최현숙 후보가 직접 나와 연설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마 제 어머니가 그러셨던 아는 친구따라 선거활동을 오셨을 분들은 잠시 뒤 둘러보니 사라지고 없으시더군요. 요는 이 예를 통해 어떤 후보는 자발적 선거운동원이 많고 어떤 후보는 조직에 포섭된 선거운동원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려는 노력은 무익하다는 겁니다. 박진 대표가 연설을 했다면 그 근처에 '자발적 선거운동원'이 있을 지도 모르는거죠.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보신당에선 그렇게 동원할 '조직'이란 게 없겠죠.) ㈏ - 일다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계기는 불명확하지만 간혹 방문해 기사를 읽는 '여성주의 저널'입니다. 아마 딴지일보를 알았을 즈음에 같이 알게 된 곳 같은데, 여성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여성주의 최전선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조선일보도 챙겨 봅니다, 그 뒤에 한겨례를 읽는다던가 하면 원치 않아도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 - 아웃팅(Outing) :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커밍아웃(coming out)과는 달리 원치 않은 시기에 주변 인물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는, 최현숙 후보를 지지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타인에 의해 밝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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