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소외의 '쏟아져 내림'
예견했던 대로는 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사람들은 정치라는 게 자신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실감했고, 그에 따른 개별적 각성을 시도 중이다. 내 동생조차 책을 사도록 만든 힘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진 얼마나 소외되어 왔었나를 깨닫게 된다. 물론 주어는 정치다.
부자 되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할 수 없는 감정적 상징으로 자리 굳힌 BC카드 광고를 필두로, 대한민국은 모든 가치판단에 우선하여 재정적 생존을 목표로 달려왔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벌고, 돈이 있으면 더 벌고, 그렇게 달려온 결과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아이러니는 뒤로 밀어둔 채 우리는 부자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를 환상이 압도할 수 있는 어떤 임계점은 이미 붕괴했다. 그 대안으로 다른 환상을 쫓는 대신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적 주장이 가능한 자신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그런 환상에 힘입어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환상의 완벽한 자기 붕괴는 기만조차 불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나 환상의 가장자리를 막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가장 비용이 적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 여겨졌던 인터넷 공간은, 그렇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비용을 박탈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시도한다는 건 엄청난 감정적 비용을 요구한다. 특정 사안의 대척점에 있는데 상호교류를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절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은 가장자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있다. 주관을 새우기가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비례해서 잔인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그들의 분노는 거세다. 다른 주관이란 걸 용납하지 못하는 에고는 실제론 상처받기 쉬운 자신을 보호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그 공격성의 정도는 이미 어떤 인간적 여지도 상실한 듯 보인다. 그런 에고의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게다가 실제로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특별한 범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저 사람 뭔가 불편하고, 까다롭고, 다가가기 힘들어. 그건 정치적 영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대립. 그런 대립은 언제나 감정적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사실 그런 비용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이 정치 불신의 악순환에 토양이 되었다.
이제 정치 불신의 원인이 정치인에 있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일반 대중의 인식체계와 동떨어진 별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해 권력을 얻어 살아가려는, 어떻게 보면 치열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일반인식들, 예를 들면 재벌이 잘 살아야 우리가 잘 살지. 이런 식의 인식체계에 변화가 가능하다면 세상은 바뀌지 말아달라고 외쳐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동감한다. 사실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앞의 전제에 동감할 뿐만 아니라 동의한다. 그러나 그 전제에 앞서 지금을 기회로 정치적 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귀중한 존재인지는 언급하고 싶다. 드디어 욕만 앞서던 시절을 넘어, 욕도 섞어가며 이야기해볼 토대가 마련될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역시 주어는 정치다.
그런데 내 동생이 사온 책이 닥치면 정치라고 이야기 했던가.
예견했던 대로는 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사람들은 정치라는 게 자신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실감했고, 그에 따른 개별적 각성을 시도 중이다. 내 동생조차 책을 사도록 만든 힘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진 얼마나 소외되어 왔었나를 깨닫게 된다. 물론 주어는 정치다.
부자 되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할 수 없는 감정적 상징으로 자리 굳힌 BC카드 광고를 필두로, 대한민국은 모든 가치판단에 우선하여 재정적 생존을 목표로 달려왔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벌고, 돈이 있으면 더 벌고, 그렇게 달려온 결과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아이러니는 뒤로 밀어둔 채 우리는 부자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를 환상이 압도할 수 있는 어떤 임계점은 이미 붕괴했다. 그 대안으로 다른 환상을 쫓는 대신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적 주장이 가능한 자신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그런 환상에 힘입어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환상의 완벽한 자기 붕괴는 기만조차 불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나 환상의 가장자리를 막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가장 비용이 적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 여겨졌던 인터넷 공간은, 그렇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비용을 박탈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시도한다는 건 엄청난 감정적 비용을 요구한다. 특정 사안의 대척점에 있는데 상호교류를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절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은 가장자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있다. 주관을 새우기가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비례해서 잔인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그들의 분노는 거세다. 다른 주관이란 걸 용납하지 못하는 에고는 실제론 상처받기 쉬운 자신을 보호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그 공격성의 정도는 이미 어떤 인간적 여지도 상실한 듯 보인다. 그런 에고의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게다가 실제로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특별한 범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저 사람 뭔가 불편하고, 까다롭고, 다가가기 힘들어. 그건 정치적 영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대립. 그런 대립은 언제나 감정적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사실 그런 비용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이 정치 불신의 악순환에 토양이 되었다.
이제 정치 불신의 원인이 정치인에 있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일반 대중의 인식체계와 동떨어진 별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해 권력을 얻어 살아가려는, 어떻게 보면 치열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일반인식들, 예를 들면 재벌이 잘 살아야 우리가 잘 살지. 이런 식의 인식체계에 변화가 가능하다면 세상은 바뀌지 말아달라고 외쳐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동감한다. 사실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앞의 전제에 동감할 뿐만 아니라 동의한다. 그러나 그 전제에 앞서 지금을 기회로 정치적 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귀중한 존재인지는 언급하고 싶다. 드디어 욕만 앞서던 시절을 넘어, 욕도 섞어가며 이야기해볼 토대가 마련될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역시 주어는 정치다.
그런데 내 동생이 사온 책이 닥치면 정치라고 이야기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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