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수사하게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사고실험 - 주관

교총이 4월 24일에 교과부에 특별사법경찰권을 요구했다.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교권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줘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교권을 되찾는 의미로 삼자는 게 교총이 밝힌 이유이다. 이미 지난 2월 13일에 교총 안양옥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특별사법경찰권을 요구했었으니 적어도 교총에선 갑자기 나온 주장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데 비판 논조의 기사가 연이어 나왔다. 그러자 다음 날 안양옥 회장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언론을 질타했다. 수사권이 아니라 조사권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며 말을 연 그는, 용어에 관한 국민들의 오류라며 특별사법경찰권이라는 용어가 대단히 위압적어서 국민들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을 체포, 신문, 구속영장 신청이 가능해진다는 말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손석희가 지적했듯이 ‘체포, 신문, 구속영장 신청’ 이 특별사법경찰권의 내용이고 그걸 요구한 게 교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조사권으로 불러달라면서, 학생을 걱정하는 교사들이 설마 명시된 권리를 행동으로 옮기겠냐는 안 회장의 발언은 그래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교권 신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사권이라는 수단이 필요한 데, 그걸 보장하는 법의 용어가 대중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니까 이미지 개선을 위한 노력을 했다고 이해해야겠다. 물론 오해였느니 그게 아니라는 식의 불통화법으로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보지만 말이다.

확실한 건 곽노현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가 촉발한 논란은, 교권을 신장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불러일으켰단 점이다. 서울시의회엔 교권보호를 위한 교권조례가 의결을 기다리는 상황이고 교총은 수사권 요구를 결국 교과부와 경찰 검찰이 받아들일 거라고 자신하는 모양새이다. 학생인권조례는 개정된 교육법 시행령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상당한 제동이 걸린 상태니까 수사권 요구만 받아들여진다면 학생인권조례로 촉발된 논쟁의 결말은 일단 교권신장이 될 모양새이다.

다만 안 회장의 말처럼 교사가 불러도 학생이 대꾸조차 안 하는 시대라서 수사권이 필요하다면, 확신하건대 수사권 정도로는 부족할거다. 왜냐하면 교권이 상대해야 하는 게 선생을 향한 치기와 반항심 정도가 아니라 교육과 교육자가 뭐 얼마나 대단하냐는, 나아가 교육이 문제풀이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를 되묻는 지금의 시대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승리라 쓰고 박근혜 만세라 읽는다 사고실험 - 주관

이번 선거를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말할 순 없다. 박근혜의 압승이기 때문이다. 각종 악재로 100석도 장담하기 힘들었던 한나라당을, 불과 몇 개월간 과반을 넘긴 새누리당으로 변모하게 한 동력은 온전히 그녀의 힘이었다. 명예도 오욕도 모두 그녀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당명을 바꿀 땐 보수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공천은 당 내에서 독재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런 논란을 딛고 전권을 행사한 결과 과반을 달성했는데 여당에서 박근혜가 아닌 다른 대선주자를 낸다면 나조차도 어이없을 것이다.

관련해서 새누리당 이상돈 비대위원은 총선 승리 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설정은 대선 전까지 부정적인 측면을 터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직접 언급했다. 오호라 이명박 OUT. 이상돈의 위치와 인터뷰에서의 다른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박근혜를 대권 주자로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데 이번에 새누리당에선 대권후보 경선 같은 요식행위는 하지 말길 바란다. 비대위에서 추대하는 형식으로 총선승리 1등 공신인 그녀를 대권 주자로 옹립하라. 선거의 여왕 박근혜 만세일세.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를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민주통합당이 헛바람이 불어서 총선 몇 달 전부터 자신들이 원내 1당이 되는 걸 전제로 이걸 하다가 신나게 떠들었다가 새누리당이 과반이 되니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거야 이해하겠는데 그런 것 치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의석차에 비해 투표율 차이는 훨씬 적었고 수도권에서는 나름 선전했다. 좀 돌려서 말했는데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신들이 받은 의석의 가치를 좀 깨달으라는 소리다. 그렇게 깽판을 쳤는데 야권연대에 130-140석은 왜 줬겠냐는 말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인정한다. 수도권에서는 박근혜 바람이 먹히지 않았다고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투표율 차이가 적은, 접전 상황이 많았던 이번 총선에서 - 심상정은 몇 표 차이로 당선되었을까요. - 새누리당이 강원 지역을 석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박근혜 바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새누리당에 부여하는 상징은, 안정감이며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이며 차기 대권을 쥘 가능성이다. 그리고 야당의 주요 인사들이(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가 없다.) 야권 연대에 부여했던 상징은, 불안감이며 주체 없는 심판이며 차기 대권 주자 따윈 보이지 않아, 였다. 그나마 패배한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야권들에게 던졌던 표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안 전략 성의 모든게 부재했던 야권에 던져진 표는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야권에서 잘해서 얻은 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대안 부재의 상황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새누리당에서만 대안을 찾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을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표현하긴 무리라고 생각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어떤 승리란 말인가. 굳이 따지자면 야권 연대를 진행했던 다양한 야권 관계자들의 총체적인 ‘실패’ 라고 불러준다면 적절하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박근혜의 승리로 마무리된 이번 총선은, 대선 정국 시 박근혜 돌풍을 예감하게 한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역구 수가 아닌 인구 수로 경쟁하는 대선에선 새누리당의 기반이 박근혜의 절대 우세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박근혜 대새론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의 존재이다. 바로 박근혜 대세론이 한창인 시절 혜성처럼 나타자 지지율을 한 번에 발라버렸던 안철수 교수? -사실 ‘정체가 뭐냐’란 말이 나올 법 하다.- 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안철수 돌풍은 사람 자체에 어떤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하기보단 정치권에 대한 오랜 환멸에 따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같은 무언가로 체화했다고 봐야 옳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건 현재로선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같은 무언가로 체화하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이토록 쉽게 일어나서 박근혜를 발라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어떤 당파적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어떤 당파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순간 그런 마법은 풀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선거에 나오지 않고, 박원순 때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를 지지해 버리는 방식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고 봤었던 때도 있지만 최근의 정치 관련 발언들로 그가 대선에 나올 의지는 충분하단 걸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는 안철수가 대선에 나온다는 걸 가정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턴 개인적인 추론인데, 나는 안철수가 대선에 나온다면, 중립지대에서 나오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에 나서기로 결정한 이상 당선되어야 한다. 안철수에 의미라는 게 참 좋고 예쁘고 입에 발린 말들이 많지만 결국 뭉뚱그려보면 당선 가능성인데, 대선에 나서기로 결정하면서 동시에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끝없이 낮추는 자멸적인 선택을 하기엔 너무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다. 그래서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 주제에 지금 정도의 정치적 지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기존 당파의 무조건적인 복종이다. 안철수란 이름 앞에 납작 엎드려서 자신의 색깔 같은 건 접어둔 채 ‘새로운 정치’라는, 정말 새누리당의 복지 정책보다 더 애매모호한 기치를 내걸고 자신의 지분과 권리를 100% 살려주는 방식의 대권후보 추대. 바로 그것이 그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그는 총선 이후에도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노선을 고집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독자노선으로 출마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안 부재의 야권이 안달복달하다 못해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다 토해내고 그에게 힘을 온전히 실어주지 않으면 안 될 임계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안철수가 범야권 후보로 출마하게 될 거라는 판단이 이 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야권과 더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정치적 기반을 모두 다 내어줄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이 대안 부재의 야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새누리당에서 박근혜가 아닌 다른 대선후보, 이를테면 안철수를 옹립한다면 그건 나로서도 인정할 수가 없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만세. 그 은혜를 어찌 저버리리오.

글을 마치며 생각해보니 사실 우리는, 아니 너무 일반화했나. 적어도 나는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로선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안철수는 어떨까. 조금 더 기대가 된다는 게 본심이다. 그 기대라는 게 보다 좋거나 보다 나쁘거나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포괄한 기대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예컨대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더 최악일 가능성도 있다. 안정성의 박근혜, 도박성이 크지만 고배당 가능성도 있는 안철수. 다만 이번 총선을 보면서 나로선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박근혜 대 안철수, 안철수 대 박근혜의 양자구도로 가보지 않는 이상에야 나로선 박근혜 대통령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전혀 찾아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정동영이 이명박에게 몇 표 차이로 발렸더라.


.. 음. 2억원을 공중에 뿌리더니, 이제 보궐선거를 예지하시는 선지자 강용석 선생께서 한번 나가보시는 것도. 아님 강용석 선생께서 친히 석방을 촉구했던 정봉주의 옥중 대선 출마?

추락

18대 국회의원이었던 사람이

자신이 이겼었던 후보가 55% 정도 득표했는데

자신은 3%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저의 지역구의 자랑


이하 생략 (..)

믿지는 않고 희망한다 사고실험 - 주관

자발적 소외의 '쏟아져 내림'

 예견했던 대로는 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사람들은 정치라는 게 자신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실감했고, 그에 따른 개별적 각성을 시도 중이다. 내 동생조차 책을 사도록 만든 힘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진 얼마나 소외되어 왔었나를 깨닫게 된다. 물론 주어는 정치다.
 
 부자 되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할 수 없는 감정적 상징으로 자리 굳힌 BC카드 광고를 필두로, 대한민국은 모든 가치판단에 우선하여 재정적 생존을 목표로 달려왔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벌고, 돈이 있으면 더 벌고, 그렇게 달려온 결과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아이러니는 뒤로 밀어둔 채 우리는 부자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를 환상이 압도할 수 있는 어떤 임계점은 이미 붕괴했다. 그 대안으로 다른 환상을 쫓는 대신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적 주장이 가능한 자신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그런 환상에 힘입어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환상의 완벽한 자기 붕괴는 기만조차 불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나 환상의 가장자리를 막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가장 비용이 적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 여겨졌던 인터넷 공간은, 그렇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비용을 박탈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시도한다는 건 엄청난 감정적 비용을 요구한다. 특정 사안의 대척점에 있는데 상호교류를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절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은 가장자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있다. 주관을 새우기가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비례해서 잔인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그들의 분노는 거세다. 다른 주관이란 걸 용납하지 못하는 에고는 실제론 상처받기 쉬운 자신을 보호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그 공격성의 정도는 이미 어떤 인간적 여지도 상실한 듯 보인다. 그런 에고의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게다가 실제로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특별한 범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저 사람 뭔가 불편하고, 까다롭고, 다가가기 힘들어. 그건 정치적 영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대립. 그런 대립은 언제나 감정적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사실 그런 비용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이 정치 불신의 악순환에 토양이 되었다.

 이제 정치 불신의 원인이 정치인에 있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일반 대중의 인식체계와 동떨어진 별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해 권력을 얻어 살아가려는, 어떻게 보면 치열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일반인식들, 예를 들면 재벌이 잘 살아야 우리가 잘 살지. 이런 식의 인식체계에 변화가 가능하다면 세상은 바뀌지 말아달라고 외쳐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동감한다. 사실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앞의 전제에 동감할 뿐만 아니라 동의한다. 그러나 그 전제에 앞서 지금을 기회로 정치적 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귀중한 존재인지는 언급하고 싶다. 드디어 욕만 앞서던 시절을 넘어, 욕도 섞어가며 이야기해볼 토대가 마련될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역시 주어는 정치다.

 그런데 내 동생이 사온 책이 닥치면 정치라고 이야기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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